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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만든 고양이 인형

 며칠 전, 성인식 끝난 뒤 있었던 동창회에서 들은 이야기다.


친구 T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고, 어머니와 둘이서 지내왔다.


T는 그런 가정환경에도 주눅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학급위원도 하고, 축구부 주장도 하면서 공부와 운동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 멋진 학창생활을 보냈다.


T의 어머니 또한 아들바보인데다 뒷바라지에 힘써, 종종 휴일이면 T랑 친구들을 데리고 수족관도 가고, 축구 경기 때는 응원도 오시곤 했다.


지금도 T와 어머니는 사이가 좋지만, 작년 T가 칸사이 쪽 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집을 나와 자취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도 아들의 독립을 응원해주며, [열심히 공부하고 오렴!] 하고 배웅해주셨단다.


집을 떠나는 날에는 [외로워지거나 힘들면 이걸 엄마라고 생각하고 기운 내렴.] 이라며 손수 만든 작은 고양이 인형을 주셨단다.


T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녀석이거든.




낯선 지방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T.


자취를 시작하고 한달 정도 지난 어느날 밤, 잠을 자다 갑자기 깨어났단다.


의식이 뚜렷해짐과 동시에, 가슴 위에 누군가 앉아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눈을 뜨려 해도 눈꺼풀도 닫힌채 열리질 않는다.


이게 가위눌림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침착했다고 한다.


단지 가슴 위에 누름돌이라도 올려져 있는 듯, 무겁고 괴로웠다고 한다.


한동안 끙끙대고 있는 사이, 어느새 또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고 한다.


방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누가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그날부터 T는 종종 한밤 중에 가위에 눌리게 되었다.




그 탓에 잠을 자도 피로는 쌓이고, 몸상태도 점점 나빠졌다.


어느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한테 받은 그 고양이 인형을 손에 쥐고 잤다고 한다.


부적 대신 삼을 생각으로 말이지.




하지만 그날 밤도 가위에 눌렸다.


T는 혼신의 힘을 다해 손에 있는 인형을 꽉 잡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꽉 닫혀 뜰 수가 없던 눈꺼풀이 번쩍 뜨였다.




T의 눈에 비친 것은, T의 가슴 위에 정좌한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잠옷 입은 여자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히익...] 하고 비명을 지른 뒤, T는 기절했다.


날이 밝고 나자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고, 오른손은 고양이 인형을 꽉 쥐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한달 정도 지나서부터 가위에 눌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익숙하지 않은 환경인데다 첫 자취라서, 정신적으로 좀 쫓기고 있었던 거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T는 웃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좋은 이야기네. 어머니가 주신 인형이 널 지켜준 거 아니야?] 라고 물었다.


하지만 T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글쎄, 그건 어떨지 모르겠네. 왜냐하면 내 위에 앉아있던 그 여자,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어머니였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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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저의 새아버지는 저희 어머니가 사랑하는 모든것을 싫어하는 분이었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취미,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드는 모든것들.. 심지어 자기 스스로까지도 말이에요. 하지만 새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아폴로였어요.

 

제가 다섯살때 저와 어머니는 작고 여윈 강아지였던 아폴로를 데려왔어요. 그는 어린아이였던 나와도 참을성있게 놀아주는 좋은 개였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가장 따랐어요. 그 당시의 제가 기억하는 행복의 단편이었죠.

 

그리고 제가 일곱살때 그 사람이 우리와 함께 살게되었어요. 그는 우리집의 행복을 견디기 어려워했죠. 그는 아폴로가 '너무 시끄럽다'며 걷어차기 일쑤였고 금새 저도 걷어차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거의 손가락이 잘려나갈뻔한 후에야 아폴로가 있는 앞에서는 저희를 때리지 않게 되었죠. 만약 제가 새아버지가 개를 무서워한다는것을 눈치챈것을 알았다면 저를 두들겨팼을거에요. 그는 약점을 싫어했고, 자기 기분이 상하거나 나빠지는것에 대해서 언제나 다른사람을 탓했거든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새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기 전에 저에게 아폴로를 다른방에 가두고 문을 잠그라고 명령했어요. 매번 아폴로는 짖고 울고 문을 벅벅 긁어댔지만 우리 이웃들은 세번 동물보호단체에 전화했을뿐 경찰에게는 단 한번도 신고하지 않았죠.

 

몇몇 개들은 문을 여는 법을 터득하지만 아폴로는 아니었답니다.

 

여덟살때 저는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그저 문을 열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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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생물 자유 선언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연의 것들을 우리 마음대로 다루고 있습니다.
툭하면 자원을 고갈 시키고, 야생 생물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그걸 또 복원한다고 손을 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모든 것을 우리의 통제 아래에 놓아야 안심이 된다는 거죠.
자원이 많으면 많다고 소모하고,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대책을 찾습니다.
특정 생물의 개체 수가 많아지면 그것 때문에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난리고, 적으면 또 적어서 멸종한다고 난리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짓을 반복할 거냐는 말입니다.
우리 역시 이 광활한 우주에서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순환하고, 복원해 나갈 것입니다.
혹시 그러다가 생태계가 망가지는 부분이 눈에 띌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역시 큰 흐름에서 이루어지는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지구와 인류에 손 좀 그만 대세요!
특히 얼마 전에 변종 코로나 뿌린 분은 제대로 입장을 밝히셔야 할 겁니다.

저희 연구 결과 어차피 그냥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죽여 개체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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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지 않은 현실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일단 확실한 것은 이 악몽 같은 현실의 시작이 불면증이었다는 거다.
밤마다 악몽을 꾸고, 깨고,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똑같은 악몽도 아니고 매번 조금씩 다른 악몽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수면제를 먹어보기도 했지만 단지 잠을 잘 깨지 않을 뿐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똑같았다.
오히려 밤새 악몽에 시달려 더 피폐해졌다.
깨어 있는 시간이 악몽을 꾸기 위한 준비 같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날도 많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정말 효과가 좋다는 수면제를 하나 추천받았다.
무슨 성분이 어쩌고 했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꿈도 꾸지 않게 잠들게 해준다고 했다.
정말 지금 딱 필요한 약이었다.

친구에게 약을 받아 집에 돌아와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물 한 모금을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잠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효과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확실히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꿈을 꾸지 않았으니까.
이제 드디어 악몽에서 해방된 것 같아 환호했다.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좀비? 괴물? 하여간 사람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이목구비가 다 뭉개진 채 이상한 쇳소리를 내는 괴물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을 나와서 마주친 현실은 더욱 끔찍했다.
꿈틀거리는 살덩이로 된, 징그러운 혈관이 돋아난 벽.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은 수 십 년이 지난 것처럼 낡아 썩어가고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럴까 싶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또 다른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을까.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뒷걸음질 치다 보니 결국 벽에 막혀 더 도망갈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까 봤던 괴물과 새로 나타난 괴물이 천천히 다가온다.

벽에 닿은 등에, 벽을 더듬는 손에 물컹한 살덩이의, 두근거리는 혈관의 감촉이 느껴진다.

괴물들이 내지르는 쇳소리 울부짖음에 귀가 쨍하니 울린다.

극한에 몰리면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했던가?
진짜 그렇게 되긴 했다.
무슨 용기가 난 건인지 주변에 잡히는 것은 아무거나 집어던졌다.
그러다 녹이 잔뜩 슨 골프채가 손에 잡혔을 때는 눈이 뒤집혀 그걸 휘둘렀다.

이 골프채는 아버지의 것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그럼 아버지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에 울컥해서 무작정 휘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 괴물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뒤늦게 눈물이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설마 이곳은 지옥일까?
자는 사이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것일까?

이 악몽 같은 상황에 절망하다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병원에서였다.
깨끗한 천장과 침대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음을 보여주었다.
또다시 끔찍한 악몽을 꾼 것이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어떻게 봐도 병원이다.
왜 병원에 와있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마 약해진 몸이 수면제를 버티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악몽도 그렇게 심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의사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었다.
몇 번을 일어나려 시도했지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 소리를 질렀다.

“여기요! 의사선생님! 간호사분 없나요!”

소리치기가 무섭게 어떤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의사는 아니지만 밖에서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저기 제가……”

“당신을 마약 소지 및 투약, 특수 폭행,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네?”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현실입니다. 당신은 마약을 하고 환각 상태에서 가족을 죽였습니다. 발견 당시 약물 부작용으로 이상 증세가 있어 우선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악몽이구나……”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그 후에는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 악몽이 어서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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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총량

 



행운에는 총량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가지는 행운의 양이 정해져있고, 그걸 조금씩 소모하면서 살아간다는 모양이다.
아마 사람마다 정해진 양이 다를 것이고, 그 이상의 행운은 불운을 가져온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불운으로 먼저 값을 치르고 행운을 받았나 보다.
어릴 때 한 번 죽을 뻔했던 이후로 언제나 행운이 따랐다.
모든 순간 이기거나 잘 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만큼은 놀랄 만큼 운이 따라 주었다.
아마 불운을 겪은 만큼 행운이 넘치기 때문일 거다.

공부는 그다지 할 필요 없었다.
적당히 풀 수 있는 것만 풀고 모르는 것은 찍으면 된다.
그래도 중상위권은 충분했다.
일도 열심히 할 필요 없었다.
운이 좋은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직장 생활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 추첨 이벤트로 모은 물건으로 살림살이를 마련하고 남는 것을 팔면 그럭저럭 괜찮은 생활이 됐다.

엄청난 행운은 아니지만 차라리 이렇게 꾸준한 것이 더 좋았다.
그다지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으니 언제나 편했다.
어쩌면 어릴 때 그 경험은 신에게 선택 받기 위한 시련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큰 행운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첫눈에 반할 만큼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여자를 만난 것도 행운인데 거기에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고려하는 상황이라니 얼마나 큰 행운일까.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그다지 모아둔 돈이 없어 결혼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장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서 허락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무언가 큰 게 필요했다.
지금까지보다 큰 거 한 방.
더 큰 행운이 필요했다.

앞으로 남은 행운을 끌어 쓴다는 기분으로 로또를 샀다.
분명히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언제나 원하는 일이 다 됐다.
누가 뭐래도 행운의 사나이니까.
신에게 선택받았으니까.
나의 행운을 믿었다.

복권 발표일이 되었다.
당첨 번호가 발표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가 맞았다.
왔다.
큰 게 왔다.

마지막 여섯 번째.

맞았다!
역시 될 줄 알았다!
언제나처럼 행운이 따라줄 것을 알았다!

그렇게 흥분해서 일어서는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쓰러졌다.
바닥에 부딪힌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삐 하는 이명이 들리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인데……

"글쎄 너무 막 쓰지 말라니까. 까먹었나 보네."

누구…?

"어이쿠 그것까지 잊어버리셨나? 너무 어릴 때 봐서 그런가?"

도대체……

"어릴 때 사고 났을 때 기억해요? 그때 나랑 계약했잖아요."

계약?

"행운을 주는 대신 그만큼 수명을 가져간다고. 근데 너무 행운을 많이 끌어다 쓰셨네. 그래서 수명이 바닥나셨습니다."

그런… 그럴 수가…… 나는 신에게……

"신은 무슨. 악마와 계약한 거지."

그럼 내 돈은…… 내 로또는……

"그건 당신 애인이 가져갈 겁니다. 다음 계약자가 그 여자거든."

무슨……

그 순간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로또 당첨됐다면서?"

그녀다.
그녀라면 나를 구해줄 것이다.
내 상황을 보면 119부터 불러줄 것이다.

"꺄악! 무슨 일이야? 괜찮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그러니 얼른 119를……

"여깄다."

부스럭거리는 종이 소리.
그녀는 전화 대신 로또를 손에 들었다.

멀어지는 의식 사이로 희미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난 행운이 따른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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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그림

 

G는 누구나 알아줄만한 대학의 미대생이지만 정작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숙제, 작업물이었다.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학원을 다니고, 실제로 그 결과 좋은 대학도 오기는 했지만 그는 한 번도 그림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미술은 ‘예술’이 아닌 ‘기술’이었다.
전혀 매력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미술에서 손놓고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대학은 졸업할 생각이고, 가능하면 이 길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제는 빼놓지 않았고, 전시회를 다니며 연구도 하고 있었다.

그날도 레포트 제출을 위해 전시회를 갔다.
유명한 누군가의 그림이라고 하지만 G에게는 역시 기계적 출력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예술이라고 평가하는지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인증용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심했다.
그저 그림일 뿐인데 거기에 필요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리려는 자신도.

생각에 잠겨 벤치에 앉아 전시회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맞은편 벤치에서 그림을 그리는 여자가 보였다.
전시회 근처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G는 그 여자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G는 무엇에 홀린 듯 여자의 뒤편으로 가서 여자가 그리는 그림을 훔쳐보았다.

따뜻한 햇살 아래 나무가 서있다.
나무는 이파리마다 햇빛을 머금고, 세월이 느껴지는 껍질을 두르고,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분명 그림이지만 너무도 생생하게 나무의 모습이 느껴졌다.

G는 처음으로 그림 앞에서 전율을 느꼈다.
미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에게 그녀의 그림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충격적이었다.

“저기요.”

자기도 모르게 G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네?”

뒤에 누가 있다고 생각 못 했던 여자가 놀란 듯 대답했다.

“그림…… 좋아하세요?”

“아, 네. 좋아해요.”

그녀는 웃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종종 만나 서로 그림을 보여주거나 함께 그림을 그렸다.
여자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 점을 부끄러워했지만 G는 오히려 그게 더 대단하다며 칭찬했다.

어쨌든 그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G는 그런 그녀의 그림이 좋았다.

그녀는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했다.
연필, 볼펜, 만년필, 목탄, 물감……
그리는 법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그림은 매력적이었다.
분명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생동감이 넘쳤다.
목탄 크로키로 그린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았고, 깃펜으로 그린 새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사람은 안 그려요?”

그녀의 그림에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은 그리기 어려워서요.”

확실히 사람이 어렵기는 했다.

“그래도 연습을 하면 점점 늘 텐데요?”

다른 그림들을 보면 안다.
분명 연습을 하면 사람도 잘 그릴 수 있을 거다.

“연습도 힘들어서……”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한 번 해봐요.”

“정말요?”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네. 얼마든지요.”

“그런…… 감사합니다.”

그녀의 웃음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럼 다음 주에 저희 집으로 와주시겠어요?”

그녀에게는 작업실이 따로 없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집 초대에 당황했었지만 지금은 이미 몇 번이나 가보았기 때문에 익숙했다.

“그럴게요.”



다음 주가 되어 G는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자신이 모델이 되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꾸미는데 힘을 썼다.

“오셨어요?”

그녀는 웃으며 G를 맞이했다.

“준비해 놨어요. 이쪽에 앉으세요.”

과연 그곳에는 적당한 크기의 튼튼한 나무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G는 아직 자신이 모델을 해주겠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준비해둔 그녀의 준비성에 웃었다.

“그리고 이거 드세요.”

평소보다 빨리 차가 나왔다.
씁쓸한 홍차를 마시며 G는 이번에는 어떤 도구로 그릴 것인지를 묻다가 잠이 들었다.

G가 깨어났을 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와준다고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안 그래도 사람을 그리고는 싶은데 뭘로 그려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거든요.”

의자에 온몸이 묶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G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무는 목탄으로……
새는 깃펜으로……
가로등은 만년필로……

그럼 사람은……

“어느 부위가 가장 좋을지 모르니까 일단 손가락부터 시작할게요.”



얼마 후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어떤 신인의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의 제목은 “인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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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해 주세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한 B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부터 갔다.
요즘 출장을 유난히 자주 다닌 탓인지 온몸이 찌뿌둥하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이번 출장은 장거리라고 업무 앞뒤로 하루의 여유를 줘서 쉴 시간은 충분했다.
다만 혼자라는 점, 그리고 경비로 처리할 수 있는 비용이 많지 않다는 점 때문에 여행 분위기를 마음껏 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제주도까지 왔는데 흑돼지든 뭐든 맛있는 것 정도는 먹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결국 B가 선택한 것은 숙소를 저렴한 곳으로 잡고 그 돈을 식비에 보태는 것이었다.
편한 잠보다 좋은 밥을 선택한 것이다.

공항에서 회사 이름으로 빌린 렌터카를 타고 도착한 곳은 ‘ㅇㅇ장’이라는 여관이었다.
이래저래 낡기도 낡았고, 시설이라고는 싸구려 냉장고와 작은 TV 하나가 다인 곳이라 잠만 겨우 잘 수 있는 곳이었다.
그나마 난방이 잘 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바다와 멀지 않고, 시내까지 교통도 좋은 편이라 B의 목적에는 꽤 잘 맞았다.

숙소에 적당히 짐을 푼 B는 일단 바닷가에 있는 식당을 갔다.
검색해서 찾아낸 식당은 맛집이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었지만 전망이 워낙 좋아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B는 기왕 전망을 즐기기로 한 김에 근처 카페도 갔다.
해변가는 아니라 관광객은 많지 않고 간간이 낚시꾼이 보이는 바닷가는 혼자 감상에 잠기기 좋았다.
쌓였던 피로가 확 풀리는 느낌에 B는 저녁 바다를 조금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와 잠들었다.

깊은 밤.
B는 TV의 잡음 소리에 잠이 깼다.
옆에 굴러다니는 맥주캔과 마른안주를 보고 자신이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다 잠 들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몽롱한 기분에 다시 자고 싶었지만 화장실을 가고 싶어져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방에 비해 조금 추운 화장실 공기에 조금 잠이 깨는 것 같았다.

볼일을 보고 텁텁한 입안을 찬물로 헹구고 나니 조금 더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 또렷해지는 감각 사이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치이이이….. 나요… 치익…… 날… 기억…… 치이이이익 칙 해…… 치직 칙칙……]

방에 불을 켜는 대신 조명 삼아 그냥 둔 TV의 잡음 사이로 말소리 같은 것이 섞였다.
B는 싸구려 여관이라 방송도 제대로 안 나오는 모양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으스스하다 생각했다.

화장실을 나온 B는 TV를 끄기 위해 리모컨을 찾았지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치이익 그날… 치칙 기억….. 치이익 치직 칙 그날……]

짜증이 난 B는 TV 전원을 직접 끄기 위해 TV 앞으로 갔다.
하지만 TV 전원은 고장 난 상태였다.
누가 라이타로 지지기라도 했는지 전원 버튼이 녹아 눌어붙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TV에는 이제 화면도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해가 저문 바닷가.
어둠이 깔린 그곳은 묘하게 B가 산책을 했던 곳을 떠올리게 했다.

기분이 이상해진 B는 전원을 뽑아버리기 위해 코드를 찾았다.

[치익 그날을… 칙… 기억하나요? 치이익… 그날…… 기억… 해요?...... 치직]

바닷가에는 한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울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끊임없이 ‘그날을 기억하냐’고 중얼거리는 여자.
감은 두 눈에서는 과장되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위기만 아니면 코미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눈물이었다.

초조해진 B는 다급하게 손에 잡히는 모든 선을 뽑기 시작했다.

[그날을 기억…… 치익… 하냐고요…… 나……]

이상할 정도로 많은 선을 모두 뽑았지만 TV는 꺼지지 않았다.

TV 속의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여자가 B를 똑바로 쳐다보며 눈을 떴다.

[이렇게 기억하는데.]

그 눈은 텅 비어있었고, 그 빈 구멍에서 물이 줄줄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B는 기절하고 말았다.



다음날 정신을 차린 B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보았다.
B의 손에는 리모컨이 잡혀 있었다.
TV는 켜진 채 아침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코드는 하나도 뽑히지 않은 상태였다.
애초에 TV와 냉장고밖에 없어 코드도 달랑 두 개였다.

피로가 쌓여서 악몽이라도 꾼 건가 싶었다.

한숨을 내쉰 B는 아침을 챙길 생각도 못하고 주저 앉은 채 TV를 보았다.
뉴스에서는 자잘한 사건 사고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아침 ㅇㅇ리 인근 바다에서 20대로 추정되는 여성의 시신이 떠올랐습니다.]

뉴스에는 B가 어제 걸었던 바닷가가 나오고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이 시신은 보존 상태가 좋으나 두 눈의 안구는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소름이 쭉 돋았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TV의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목격자에 따르면 사망한 여성이 근처 여관에 머물렀던 것으로……]
[주머니에 있던 유서에는 ‘그날 제주도의 바다를 기억하세요’라는 문구가……]

B는 도망치듯 짐을 싸서 여관을 나왔다.

다행히 그  후로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후로 B는 어지간하면 여관을 숙소로 잡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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