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산마루에 온갖 잡신들을 모신 사당이 있었는데, 그 효험이 꽤 영험했다.
[청구야담][18th]못된 귀신을 물리친 관찰사(毁淫祠邪鬼乞命)
산 주변 마을을 다스리는 이들이 이 곳을 지날 때면 반드시 가마에서 내려 절을 한 뒤, 돈을 모아 신들에게 굿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나중에 이상한 재앙을 맞곤 했다.
그러던 와중 한 관찰사가 새재 너머의 마을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성품이 강하고 과단성이 있어서, 무슨 화를 입을까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그가 새재를 넘다 사당 앞에 도착하니, 아전들이 몰려들어 예전 사또들의 일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관찰사는 그런 요사스러운 짓은 말도 안 된다고 물리친 뒤 말을 타고 한달음에 그 곳을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갑자기 바람이 세게 휘몰아치더니, 난데없이 비가 관찰사가 탄 가마에만 집중적으로 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주변 사람들은 귀신의 소행이라며 몹시 두려워했다.
관찰사는 마부에게 명령해 사당에 불을 지르라고 시키고, 명령을 거르스는 자들을 죽였다.
아랫 사람들이 마지못해 그 명령을 따라 사당을 태우니, 곧 사당은 싸늘한 재가 되었다.
관찰사는 그대로 새재를 내려와 문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관찰사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새재의 신이오. 새재 사당에서 제삿밥을 먹은지 100년이 넘었소. 그런데 당신은 예도 올리지 않은데다 내 집까지 태워버렸으니, 나는 당신의 맏아들을 죽여버릴 것이오.]
관찰사가 노인을 꾸짖으며 말했다.
[요망한 귀신이 사당에 눌러 앉아 사람을 괴롭히니, 내가 왕명을 받들어 요사한 것을 제거했다. 이것은 내 직분인데 네가 감히 나를 협박해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느냐!]
귀신은 화를 내며 가 버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관찰사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큰 아드님께서 여행의 피곤함 때문에 병이 드셨는데, 갑자기 위독한 지경에 이르셨습니다!]
관찰사가 가서 아들을 보니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관찰사는 곡을 하고 아들의 염을 한 뒤, 곧 관청에 들어섰다.
그 날 밤 귀신이 또 관찰사의 꿈에 나타나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내 사당을 불태운 것을 회개하고 새로 사당을 지어주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당신의 둘째 아들이 죽을 것이오.]
관찰사는 여전히 의연한 모습을 지키며 지난 번처럼 귀신을 꾸짖어 물리쳤다.
아침이 되자 관찰사가 눈을 뜨기도 전에 집안 사람이 와서 둘째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고했다.
관찰사는 매우 슬퍼하며 아들의 장례를 치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찰사의 꿈에 귀신이 또 나타나 말했다.
[첫째를 죽이고 또 둘째를 죽였으니 당신의 자식은 점점 줄어갈 것이오. 이번에는 셋째 아들이 죽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이 불쌍해서 내가 기회를 주려하니, 빨리 내 사당을 지어주면 셋째 아들의 목숨은 살려주겠소.]
하지만 관찰사는 이 말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귀신은 점점 화를 내며 온갖 협박을 하고, 끝내 좋은 말로 달래기까지 했다.
관찰사는 화가 나서 칼을 빼어들고 귀신을 베려고 했다.
그러자 귀신은 뒤로 물러나더니 뜰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말했다.
[저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저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오직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어르신의 두 아드님은 수명이 다하여 돌아가실 예정이었기에 제가 그것을 알고 어르신을 협박한 것입니다. 하지만 셋째 아드님은 그 지위가 높이 오르고 오랫동안 건강하실테니 제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르신께 온갖 공갈 협박을 한 것이었지만, 어르신께서는 끝내 올바름을 지키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르신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관찰사가 딱히 여기며 말했다.
[네가 오랫동안 황폐한 사당에 살면서 지냈는데, 내가 어찌 네 집을 마음대로 부수고 싶었겠느냐? 네가 너에게 화가 났던 것은 요망한 술수로 사람들을 희롱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네가 그것을 자백하니 불쌍히 여길 수 밖에 없구나. 내가 새로 너의 집을 지어주마. 하지만 만약 네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당장 부숴버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귀신은 감동하여 흐느끼며 절하고 돌아갔다.
관찰사는 다시 사당을 세우고 그가 꿈에서 본 귀신의 모습을 흙으로 빚어 세워 두었다.
그 이후에 문경새재를 넘어 다니는 사람들은 귀신에 대한 근심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관찰사의 셋째 아들은 오랫동안 살면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 갔으니, 귀신의 말이 과연 맞았다.
[청구야담][17th]원한을 달래준 김상공(檢巖屍匹婦解寃)
상공 김아무개가 젊었을 때, 친한 친구 서너명과 함께 백연봉 아래에 있는 영월암에서 공부를 했다.
하루는 친구들이 다 집에 돌아가서 깊은 밤에 혼자 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인이 곡하는 소리가 원망하는 듯 하소연하는 듯 영월암 뒤쪽 멀리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곡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와 창 밖에 와서 멈췄다.
공은 괴이하게 여겼지만 똑바로 앉아 흔들리지 않고 물었다.
[밖에 있는 것은 귀신이오, 사람이오?]
그러자 밖에서 여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귀신입니다.]
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귀신 주제에 감히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느냐?]
그러자 여인이 말했다.
[제가 살아 있을 때 해결하지 못해 한이 된 것이 있는데, 어르신이 아니면 그 한을 풀어주실 분이 없을 것 같아 하소연하려고 왔습니다.]
공이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여인은 보이지 않고 공중에서 휘파람 소리만 나면서 말소리가 들렸다.
[제 모습을 드러내면 공께서 놀라실까 두렵습니다.]
공이 말했다.
[일단 네 모습을 드러내 보거라.]
공이 말을 마치자 눈 앞에 한 젊은 여인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공이 말했다.
[그대는 무슨 원통한 일을 겪어서 내게 하소연하려는 것인가?]
[저는 조정 관리의 딸로 아무개의 집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요망한 계집에게 홀려서 저를 꾸짖고 때리더니 결국 그 여자의 꾀임에 넘어가 한밤 중에 저를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영월암 절벽 사이에 버린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남편은 우리 부모님에게마저 제가 바람이 나서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제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도 슬픈데, 죽어서 오명까지 뒤집어 쓰니 이 원한은 저승에서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이 말했다.
[네 사정이 비록 딱하기는 하지만 나는 그냥 선비일 뿐이다. 무슨 방법으로 원한을 풀어줄 수 있겠느냐?]
여인이 말했다.
[공께서는 어느 해에 과거에 급제하실 것이고, 어느 해에는 이러한 관직에 올랐다 어느 해에 형조참의가 되실 것입니다. 형조는 형벌을 다루는 곳이니 그 관직에 오르시면 제 원통함을 풀어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여인은 하직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공이 몰래 절벽 사이를 살펴 보았더니, 과연 한 여인의 시체가 있었는데 바로 어제 봤던 그 여인이었다.
여인의 시체는 피에 흠뻑 젖어 있어 마치 금방 전에 죽은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공은 돌아와 책을 읽으며 그 사실을 비밀로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후 공은 귀신의 말대로 과거에 합격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참의에 이르게 되었다.
공은 귀신의 하소연을 기억하고 곧장 관아에 달려가 그 여자의 남편을 잡아들여 신문했다.
[너는 영월암에서 억울하게 죽은 네 아내를 기억하겠지?]
하지만 그는 변명을 하며 범행을 부인하였다.
그리하여 공은 그를 영월암으로 끌고 가서 시체를 보여주었다.
그는 말문이 막혀 한참을 멍하니 있다 곧 모든 사실을 시인하였다.
공은 여자의 부모를 불러서 장례를 치루게 하고, 그녀의 남편은 사형에 처했다.
밤에 공이 다시 영월암에 들어가 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 있으니, 그 여인이 다시 나타나 창 밖에서 울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그 여자는 전과는 다르게 머리를 쪽지어 단정히 하였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있었다.
공은 그녀를 가까이 불러 자신의 운세를 물었더니 여인이 대답했다.
[공께서는 어느 해에 어느 직급에 올라가시고, 결국에는 대관의 지위에 이르실 것입니다. 어느 해에 나라를 위해 일하시다 돌아가실텐데, 죽은 후에도 그 명성이 전국에 자자할 것입니다. 자손도 크게 번창할 것입니다.]
그녀는 말을 마친 뒤 하직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공은 여자가 읊어 준 운세를 평생 기억했는데, 역시 모든 것이 그녀의 말처럼 이루어졌다.
공은 말년에 나라를 위해 일하다 순국하였으며, 그 명성이 후대에까지 아름답게 기억되었다고 한다.
[청구야담][16th]이경류의 혼령이 나타나다(投三橘空中現靈)
이경류가 병조좌랑이던 때 임진왜란이 터졌다.
당시 이경류의 둘째 형은 나라를 위해 붓을 내던지고 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조방장 변기가 전쟁에 나서면서 이경류의 둘째형을 종사관으로 삼기 위해 임금님에게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하필 이름을 잘못 써서 이경류의 이름이 올라가고 말았다.
둘째 형이 이경류에게 말했다.
[내가 전쟁에 나서야 하는데, 이름이 네 이름으로 잘못 올라갔구나. 하지만 당연히 내가 전쟁에 나가야 옳을 것이다.]
그러자 이경류가 말했다.
[이미 제 이름을 보고 임금님이 허가를 하셨으니 제가 가야합니다.]
이경류는 무구를 챙겨 어머님께 인사를 올리고 전장으로 나섰다.
하지만 변기가 영남에서 크게 패하고 죽어버려서, 장군을 잃은 진중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이경류는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혼자 말을 타고 그 곳으로 가서 윤섬, 박호와 함께 이일의 밑에서 머물렀다.
이일의 군대가 전투를 치렀으나 형세가 불리하여 진이 함락되고 윤섬과 박호도 크게 다쳤다.
이경류가 진 밖으로 나가니 시종이 말을 끌고 이경류를 기다리고 있다 흐느끼며 아뢰었다.
[주인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서둘러서 이 말을 타고 서울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경류가 웃으며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위기에 처했는데 어찌 내가 죽지 않고 욕되게 살라고 하느냐?]
그리고 지필묵을 꺼내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써서 도포자락 속에 감춘 뒤, 시종에게 그것을 전하라고 시켰다.
이경류가 말을 타고 적진 가운데로 향하려고 하자, 시종은 그를 껴안고 울면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이경류가 말했다.
[너의 정성이 갸륵하구나. 내가 네 말을 따라 서울로 돌아가겠다. 그런데 내가 지금 몹시 배가 고프니 밥을 좀 구해왔으면 좋겠구나.]
시종이 그 말을 믿고 주변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차려 돌아와보니 이경류는 이미 적진으로 향한 뒤였다.
시종은 적진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이경류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경류는 적진에서 맨손으로 왜구를 쳐 죽이다 결국 상주 북문 밖 평야에서 죽었으니, 그 때 24살이었다.
시종이 말을 끌고 서울로 돌아가니, 집안 사람들이 그제야 이경류의 죽음을 알았다.
편지를 쓴 날을 기일로 삼고 장례를 치뤘다.
시종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말 또한 먹이를 먹지 않더니 굶어 죽었다.
가족들은 이경류가 남긴 물건들을 거두어 관에 넣어 경기도 광주에 장사 지내고, 그 옆에 시종과 말의 무덤도 만들어주었다.
상주의 선비들은 제단을 지어서 이경류의 제사를 지내 주었고, 조정에서는 도승지를 추서했다.
을묘년에는 정조 임금께서 친히 충신의사단이라는 글을 써서 북평에 사당을 세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경류는 죽은 후 매일 밤 집에 왔는데, 그 목소리와 웃는 모습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았다.
부인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나 음식을 마련하여 올리면 먹고 마시는 것이 살아 있을 때와 같았는데, 나중에 보면 음식은 그대로 있었다.
이경류는 매일 날이 저물면 왔다가 닭이 울면 문을 나섰다.
부인이 이경류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의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알 수 있다면 고향으로 모셔와 제대로 장례를 치루겠습니다.]
이경류가 슬피 울며 말했다.
[그 수많은 백골이 쌓여 있는 곳에서 어떻게 내 몸만 찾을 수 있겠소? 그냥 두는 게 더 좋을 것이오. 게다가 내 몸이 묻힌 곳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곳이오.]
죽은지 1년이 지나자 이경류는 이틀에 한 번씩 오기 시작했다.
죽은지 2년이 지나자 이경류는 말했다.
[나는 이제 오지 않을 것이오.]
그 때 이경류의 아들 제는 나이가 겨우 4살이었다.
이경류는 제를 어루만지며 탄식했다.
[이 아이는 과거에 급제하겠으나, 그 후 불행해질 것이오. 그 때가 오면 내가 다시 오겠소.]
그 말을 남긴 뒤 이경류는 사라졌는데, 그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윽고 20여년이 흘러 광해군 때에 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사당에 알현할 때, 공중에서 신참의 신고식을 하라고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이경류의 늙은 어머니가 병에 걸렸는데, 그 때가 5월 즈음이었다.
노모가 목이 말라 시종에게 말했다.
[어떻게 귤 하나만 구할 수 없을꼬? 그걸 먹으면 갈증이 싹 가실 것 같은데...]
며칠 뒤 하늘에게 이경류가 형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이 뜰에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 속에서 이경류가 귤 3개를 던지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귤 생각을 하시기에 제가 동정호에서 귤을 얻어왔습니다. 이것을 드리면 어머님의 병이 곧 나을 것입니다.]
도암 이재가 신도비에 [공중에서 귤을 던지니 정신이 황홀하구나.] 라고 쓴 것이 바로 이 광경을 뜻하는 것이다.
이경류의 제삿날이 되면 언제나 병풍 뒤에서 밥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종가에서 제사를 지낼 때 계집종이 실수를 해서 머리카락이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제사가 끝난 뒤 바깥채에서 시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자세히 들었더니 그 소리는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시종이 사랑방에 들어가자 이경류의 목소리가 떡을 만든 계집종을 잡아오게 하고 분부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머리카락을 꺼린다. 너희는 어째서 머리카락이 있는지 잘 살피지 않았느냐? 그 죄는 매를 맞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계집종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릴 것을 명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는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감히 후손들이 이경류의 제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구야담][15th]베옷 입은 노인의 영험한 예언(料倭寇麻衣明見)
첨지 김윤신은 점술사 남사고와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남사고의 집에 가면 언제나 베옷 입은 노인이 남사고와 점괘를 논하고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파란 옷과 나막신으로 나라 일을 알 수 있을 것 같소.]
남사고가 한참 생각하고 말했다.
[그렇군요.]
노인이 또 말했다.
[머지않아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고, 임금이 궁궐을 떠나는 재앙이 이를 것이며, 서쪽 변방까지 가서야 겨우 도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남사고가 또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노인이 또 말했다.
[두번째 들어올 때는 한강까지 오지 못할 것이오.]
남사고는 이번에도 한참을 생각하고 말했다.
[과연 그 말이 맞습니다.]
김윤신이 옆에서 그 말을 주워 들었지만, 도저히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옷과 나막신이 세상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옛날 우리나라에는 나막신이 없었는데, 임진왜란 직전에 나막신이 들어와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두루 신게 되었다.
또한 기자가 흰 옷을 입고 이 땅에 온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흰색 옷을 입었는데, 임진왜란 전에 흰 옷을 입지 못하게 금지하여 모두 파란 옷을 입었던 것이다.
임진년 여름이 되자 왜구가 우리나라 깊숙이 들어와서, 마침내 선조 대왕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임금님의 가마가 의주에서 머무르다가 왜구가 평정된 후에야 서울로 돌아왔으니 과연 베옷 입은 노인의 말이 모두 들어 맞은 것이었다.
정유년이 되어 왜구가 다시 쳐들어와 서울이 혼란에 빠졌다.
그 당시 명나라 장군 양호가 우리나라에 와 있었다.
선조 대왕과 양호가 남대문에 나가서 조정의 여러 신하들과 적을 막아낼 방법을 논의하고 있었다.
김윤신도 그 때 음사 미관으로 임금님을 따라 맨 끝에 서 있다가,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두번째는 한강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 소리에 모든 조정의 신하들이 놀라고, 임금님마저 놀라서 물으셨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그래서 김윤신을 임금님 앞에 데려와서 물었다.
[방금 전 두번째는 한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한 것은 무슨 소리냐?]
김윤신은 이전에 베옷 입은 노인에게 들었던 것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보면 그 노인의 예언이 모두 들어맞았나이다. 그러니 이번 두번째에 한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 역시 반드시 맞을 것입니다.]
임금님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셨다.
즉시 김윤신의 벼슬을 껑충 올려서 첨지로 삼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호가 보낸 부하 마귀가 충청도 직산 소사평에서 왜구를 만나 기병으로 물리치고 경상도까지 밀어냈다.
이로써 베옷 입은 노인의 마지막 예언까지 모두 맞아 떨어진 것이다.











